[코리아 VR 페스티벌 가보니] 

운전석만 한 의자에 앉아서 현대車 22개 모델 모두 체험 
용접 훈련·스케일링 시술… 비싼 실습 재료비 절약 가능 
산업용 VR시장 작년 6700억원, 2021년 10조원대로 성장 전망

16일 서울 마포구 상암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코리아 VR(가상현실) 페스티벌 2017′ 행사장. 기자가 자동차 운전석 모양 의자에 앉아 HMD(Headmounted Display)를 머리에 쓰자 눈앞에 현대자동차 ‘코나’의 내부 모습이 나타났다. 차는 앞뒤로 잔디밭이 펼쳐진 개방형 차고 안에 주차돼 있다. 운전석 문손잡이를 잡고 여는 시늉을 하자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와 차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자동차 대리점에서 전시된 차를 보는 듯 생생했다. 차체 색깔과 내장재 선택사항(옵션)을 바꾸자 눈앞의 차 모습이 그대로 바뀌었다.

 

VR(가상현실) 기술이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산업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16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코리아 VR 페스티벌 2017’에서 3차원 영상 전문 업체 ‘지스콤’ 관계자가 현대차 신차종을 가상 공간에서 체험해볼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쇼룸’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성형주 기자

기자가 체험한 것은 3차원 영상 전문 업체 지스톰과 현대오토에버가 VR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디지털 쇼룸’. 자동차 운전석만 한 의자 하나와 HMD만 있으면 현대차 22개 모델을 모두 체험할 수 있다. 여기에 무려 27만여 가지의 선택사항을 적용해 볼 수 있다. 국내와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호주 등 해외 6국의 현대차 일부 매장에 도입됐다. 지스톰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가상 공간에 동시 접속해 함께 자동차를 설계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가상 공간 속 3차원 자동차 모형의 전면유리를 좌우로 잡아당겨 크기를 늘리면 그대로 설계도가 바뀌고, 접속 중인 다른 디자이너들에게도 바뀐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다. 11월 현대차 디자인센터에 도입될 예정이다.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산업 분야에 본격 적용

VR 기술이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조선·의료·건설 등 산업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생생한 체험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살려 소비자 마케팅과 제품 설계, 산업 인력 교육 등에 활용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트랙티카에 따르면 산업용 VR 시장은 지난해 5억9230만달러(약 6700억원)에서 2021년 92억달러(약 10조42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16일부터 20일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리는 국내 최대 VR 행사 ‘코리아 VR 페스티벌 2017’에서도 194개 부스 중 49개가 VR 기술을 산업 현장에 적용한 업체들의 부스다.

기자가 노바테크의 HMD를 머리에 쓰자 건조 중인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저장 탱크 내부가 펼쳐졌다. 현장 작업자가 돼 탱크 안을 돌아다니는 체험이다.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사다리를 내려가다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었고 바닥에 널브러진 전선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노바테크 관계자는 “실내 교육장에 앉아 강의를 듣는 것보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콘텐츠는 올해 초 현대중공업의 VR 안전체험관에 도입돼 임직원 안전교육에 쓰이고 있다.

토탈소프트뱅크는 가상으로 용접을 해볼 수 있는 ‘용접 훈련 시뮬레이터’를 선보였다. 사용자는 가상 공간에 나타난 금속판에 모조 토치(가스 용접에 쓰이는 화염 분출기)를 대고 가상으로 용접을 해볼 수 있다. 실습에 들어가는 재료비를 절약할 수 있고, 실제 토치에서 나오는 가스와 불꽃으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도 없다. 시뮬레이터가 용접 정확도와 속도, 토치를 쥐는 각도, 시선 처리 등을 정밀하게 평가해준다. 국내 폴리텍대학과 마이스터고 6곳에 도입됐고 지난해 인도네시아 항공학교에도 수출됐다. 이 회사는 최근 조선소·항만에서 쓰이는 골리앗 크레인과 컨테이너 크레인 기사 훈련용 VR 시뮬레이터도 개발했다.

가상 수술·환자 체험 등 의료 분야까지

의료 분야에도 VR이 속속 적용되고 있다. 솔리드이엔지가 경북대병원 등과 개발 중인 ‘정형외과 수술 항법 시스템’은 고관절 수술 예정 환자의 CT/MRI 자료를 보고 환자의 골격을 가상 공간에 3차원으로 재현해준다. 의사는 이 골격도를 보고 수술 계획을 세울 수 있다. 3D 프린터로 골반뼈 모형을 출력해 예행연습도 가능하다. 카메라가 인공 고관절이 들어가는 각도를 인식해 최적의 각도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모니터에 표시해준다. 실제 수술에서 인공 관절이 정확한 각도로 한 번에 들어갈 수 있어 부작용이 줄어든다.

 

의료용 VR·AR(증강현실) 기술 업체 ‘솔리드이엔지’ 관계자가 인공 고관절 수술을 돕는 VR·AR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카메라가 고관절이 삽입되는 각도를 인식해 최적의 삽입 범위를 모니터에 표시해준다. /성형주 기자

분당서울대병원은 2015년부터 외과·정형외과·흉부외과 교육에 VR을 활용하고 있다. 수련의·전공의들은 VR용으로 촬영한 실제 수술 영상을 HMD를 쓰고 보면서 실제 수술실에서 참관하고 있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환자들은 CT/MRI 촬영이나 수술 전 단계를 VR로 미리 체험해볼 수 있다. 제이케이덴스와 KAIST가 개발 중인 치과 시뮬레이션 장비는 치과기공사들이 스케일링(치석 제거) 시술을 가상 화면을 보며 연습할 수 있게 해주는 장비다. 1개에 20만원이 넘는 연습용 치아 모형을 대체할 수 있다.

 

[김경필 기자 pi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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